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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여자친구.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우리는 참 달랐다. 가치관도. 취미도. 성격도. 그러나 우리는 어떤 연인들이나 겪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제법 무난하게 보냈다. 서로의 다름에 대해 가끔 다투었지만 비교적 자연스럽게 서로를 받아들였다.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고 우리의 관계는 점점 깊어졌다. 많이 달랐던 우리지만 시간이 지나자 서로 많은 부분을 닮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겠다는 다짐은 필요없었다. 결혼은 우리가 앞으로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단계’ 정도로 생각했다.

 

 

결혼


20대에는 막연하게 33세 정도에 결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33세가 되던 해에는 결혼을 감히 엄두 내지 못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37세가 되었다.

우리는 종종 결혼에 대해 이야기했다. 30대에 나누는 결혼 이야기는 로맨스보다는 리얼리즘에 가까웠다. 기대에 찬 상상보다는 현실적인 계획이 필요했다. 목표는 확고했으나 현실은 막막했다. 대학원에 입학해서 사업을 시작했고, 모아둔 돈은 없었다.

30대 중반을 맞이한 여자친구의 조바심 가득한 질문에 궁색한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꽤 보냈다. 되돌아보면 참 답답했던 시간이었다.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함께 살 집이 해결되었다. 그리고 나니 모든 것은 빠르게 진행됐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하며 나름 과감한 결정을 하며 살아왔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돼버렸다. 감사하다. 세상.

 

 

결혼식. 인생 돌아보기


지인들의 결혼식에 참석할 때면 늘 회의를 느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런데 실제로 결혼식을 해보니 기분이 달랐다. 내가 지금까지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왔는지에 대한 중간 점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족, 친척, 초등학교 친구들부터 최근 관계한 친구들까지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는 꽤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하객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볼 때마다 과거에 그들과 관계했던 짧은 시간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변화


결혼을 하고 나니 어떻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삶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생활 자체가 변화한 것도 있지만, 세상을 보는 관점도 많이 변했고 삶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변해간다.

– 일은 아무래도 조금 덜 하게 됐다. 그렇다 보니 어떻게 더 효과적, 효율적으로 일할 것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니까.
– 머리는 좀 가벼워졌다. 아무래도 결혼이라는 게 거사는 거사인 모양이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결혼에 대해 사회적으로 많은 압력을 받아왔던 것 같다.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에 대해 큰 부담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 ‘나’를 중심으로 구성된 세계를 ‘우리’로 바꾸는 과정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다.

어느 날 아내가 했던 말이 크게 와닿았다. 이제는 나한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본인이라고.
나는 이 말이 현재 결혼 생활의 정수와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을 함께 고려하며 살아가는 인생 2부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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