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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SEMBA


이 과정에 대해서 알게 된 건 꽤 오래전이었다.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자가 입학해서 전문 경영 교육을 받는 풀타임 MBA 과정이라고 들었다. 당시에는 이 과정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왜냐하면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청년 사회적기업은 대부분 매우 영세하거나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대표자가 사업에만 100% 몰입해도 될까 말까인데 대학원에 입학하면 사업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힘들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퇴사를 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4~5 개월 정도가 흘렀다. 간헐적으로 디자인일을 하고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창업에 대한 구상은 지지부진했다. 나를 움직일 자극이 약했다. 그때 우연히 지인이 이 과정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이 과정을 나의 현실에 대입했다.

“음…지금? KAIST SEMBA?”

…..

“괜찮겠는데?”

급하게 지원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운이 좋았는지 다행히도 합격했다.

 

 

사회적기업, 소셜벤쳐, 도대체 무엇인가


입학은 꽤나 설레는 과정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 다시 강의실에 들어가는 것. 혹독하게 일해왔던 나로서는 여러모로 환기가 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여유로운 두뇌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쳐를 정의하는 무거운 숙제를 짊어졌다. 매우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는 충분히 깊이 있게 고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회적기업이라는 테마를 갖고 꽤 오랜 시간을 지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았다.원래 특정 대상을 정의 내리는 일은 대상에 대해서 잘 알수록 어려워지는 법이다. 동기들과 몇 날 며칠을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토론했다.

그런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던 것은 장대철 교수님이었다.

“삼성전자는 왜 사회적기업이 아닌가요?”

강의실에서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던 그 순간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사회적기업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 첫 번째로 던져봐야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항상 고민했던 지점이었기에 너무나 반가운 순간이었다. 그 후로도 장대철 교수님은 줄곧 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교수님께 질문하고 함께 토론했던 시간은 늘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 이미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앞으로도 투자하리라 마음 먹은 주제를 다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교수님께 끈질기게 도전하고 질문하고 토론했다.

많은 학생들은 교수님을 어렵고 힘들어했다.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매우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집요하게 퍼부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교수님을 설득하는 것이 학교가 요구하는 특정 단계를 달성하기 위한 숙제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순수하고 진지했다. 수개월을 교수님과 그렇게 교류했다. 그리고 교수님은 그런 나를 인정해줬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교수님은 본인의 생각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당신이 생각해 본 부분들을 학생들도 생각해보길 기대했다. 나는 그렇게 교수님과 대화했지만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에 대해 교수님과 다른 정의를 갖고 있다. 나는 단단해졌다. 나는 바르게 배웠다.

교수님뿐만 아니라 나는 동기들과도 사회적기업에 대해 그렇게 씨름을 했다. 밤이 새도록 토론하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누군가는 또 그 얘기냐면 손사래를 쳤지만 나는 이 시간이 무척이나 즐겁고 흥미로웠다.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키워드였던 ‘사회적기업’에 대해 나와 유사한 수준으로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즐기면서 단단해졌다.

 

 

진짜 창업


나는 누구보다 잘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스타트업에 5년간 일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준비된 창업가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적어도 입학할 당시에는 그랬다.

돌이켜보건대 나는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부족했다.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은 말 그대로 알고 있던 것에 불과했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무엇 하나 예상한 것만큼 이거나 예상한 것보다 쉬운 것은 없었다. 사업을 구상하고, 동료를 모으고, 자금을 끌어오고,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고… 접고 다시 만들고 또 운영하고…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2년 동안 정말 창업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이면 그럴듯한 모양새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말 혹독했고 구상한 것의 반 정도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학교에 있으면서 사업에 대해 참 많이 배웠다. 그중에서도 사업에 대해 가장 많이 배운 것은 ‘남’에 대한 것이었다. 사업은 ‘나’보다는 ‘남’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남’은 때로는 고객, 때로는 동료, 때로는 투자자였다. ‘나’는 가장 마지막이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고 너무나 쉬운 개념이지만 이것을 내재화시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남’에 대해 몰입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어쨌든 법인을 설립하고 팀원도 모으고 서비스도 출시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느리게 그리고 어렵게.

 

 

동기들


이 과정을 통해서 정말 많은 수혜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수혜를 뽑으라면 단연코 동기들이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을 20명을 얻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재산이고 뜻깊은 인연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관심사를 이렇게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공유하는 조직에 있어본 적이 없다. 늘 혼자 고민하고 혼자 실행했다. 이곳에 와서 사람들이 왜 동아리, 모임 활동을 하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만나기만 하면 늘 사업 얘기만 해서 나중에 사업을 못하거나 안하고 있을 상황이 되면 이 좋은 친구들을 어떻게 만날까 걱정이 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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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직후에 동기들에 대해서 감상을 한 명 한 명 기록했다.

사업의 친구를 넘어 인생의 친구가 될 수 있길 기대한다.

졸업 – 벌써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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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2년이 이렇게까지 빨리 지나간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의 속도였다. 그만큼 몰입했다. 지난 2년은 현실적으로는 매우 혹독한 시간이었지만 뜻깊은 추억을 많이 남겼다. 동기들과 즐겁게 대화하던 시간, 진지하게 교수님들의 수업에 빠져들었던 시간, 사업하겠다고 불철주야 동분서주하던 시간… 진심을 다한 만큼 진하게 남는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침이 심했지만 행복했다.

개인적인 만족을 넘어 내가 얼마나 사회에서 혜택받은 사람인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 내가 사회의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늘 힘에 부쳤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동안 내가 큰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와줬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줬다. 누군가는 이 혜택이 내 개인적 노력의 결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졸업을 하며, 나에게 기회를 준 세상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가장 크게 들었다. 앞으로 갚아야 할 일이다.

졸업행사에서 입학 초기에 작성했던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나눠 받았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일이다. 그 편지에 뭐라고 썼는지 기억이 도무지 나질 않았다.
편지를 열어보니,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참으로 무심한 한 문장이 적혀있었다.

“후회없지?”

맞다. 나는 실패 없는 인생보다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편지를 읽고 나 스스로 명확한 답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SEMBA는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나에게 SEMBA는 창업의 문이었다. 나는 이곳을 통해 창업의 삶에 진입했다. 정확하게 내가 목표했던 바였다.

창업의 문, SEMBA를 거쳐 이제는 진짜 게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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