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오르그닷에서 오르그닷으로


대표님과의 일을 중단하고 다른 직원들과 함께 일하게 됐다.
회사는 같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이 변했고 업무도 변했다.

다른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하며 회사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오르그닷은 3년 차 회사였지만 초창기 사업 실패의 타격으로 여전히 걸음마 단계였다.

직원수는 나를 포함해서 6명이었다.
상황은 어려웠지만 가능성과 자신감을 갖고 일했다.
6명의 직원들은 모두 열정을 갖고 똘똘 뭉쳐 밤늦게까지 회의하고 일했다.

가난하고 배고팠지만(회사나 나나) 직원들의 뜨거운 열정이 좋았다. 이게 벤쳐구나 싶었다.
체계적인 시스템에 따른 업무 분담은 당연히 없었고 필요한 일은 모든 다했다.

원부자재 발주를 하기도 하고.
디자인 교정을 하기도 하고.
납품 지원을 하기도 하고.
블로그 운영을 하기도 하고.
QC를 보기도 하고.
행사도 나가고.
미수금 독촉도 하고.(???)

나뿐만 아니라 전문직이 아닌 대부분의 직원이 이렇게 정신없이 닥치는 대로 일했다.

 

 

afmbi

B2C 브랜드 사업 A.F.M


내가 합류하기 조금 전부터 오르그닷은 B2C 브랜드 사업을 기획하고 있었다.
스트릿 감성의 남성복 브랜드를 기획했고 나도 곧 이 일에 참여하게 됐다.

브랜드 이름은
A.F.M(Apparel for Movement)
친환경적인 소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캠페인도 제품과 함께 멋지게 풀어내고자 했다.
무엇보다 사회적인 가치를 전달하는 쿨한 패션 브랜드를 만들어보자는 취지가 강했다.
(Apparel for Money-제발 돈 좀 벌어보자는 의미도…있었다.)

나는 마음속 깊이 이 컨셉을 살리고 싶었다. 누가 봐도 멋진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사회적 기업 제품의 고리타분한(착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다.(내가 사회적 경제 영역에 들어온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브랜드 MD를 맡았는데 말이 MD지 제품 생산과 관련된 일을 제외하고 브랜드 운영에 필요한 거의 모든 일들을 감당해야 했다.
시즌 컨셉 기획, 제품 기획, 마케팅 전략 기획 및 실행, 유통 관리, 커뮤니케이션, 컨텐츠 제작, 제품 검수, C/S 심지어는 배송까지.
(외국인 모델을 ‘저가에’ 섭외하려고 이태원과 경리단 길을 배회했던 기억도 난다.)

정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필요한 일은 배워서 했다.
머리, 몸, 말로 하는 일은 물론 기술(포토샵,일러스트레이터,파이널컷 등)이 필요한 일도 가리지 않고 배웠다.
12시 전에 집에 들어오는 날을 손에 꼽았다.

평일에는 운영과 관련된 일을 하고 주말에는 기획과 컨텐츠 제작을 했다.

난 이 브랜드를 정말 내가 만들어가는 브랜드라고 생각하고 일했다.
실제로 내가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어갈 수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감사하게도 내 의견을 많이 반영해줬다.

주도적으로 일하는 건 너무나도 즐거웠다.

 

 

AFM_2013FW_2_lookbook_24

브랜딩


열심히 일한 만큼 많은 걸 이해하고 배울 수 있었다.
브랜딩, 고객 관리, 출시 제품 선정과 가격 설정, 제품 퀄리티와 원가 관리, 유통몰과 자사몰 판매의 균형, 재고 소진과 현금 흐름 등등…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쉬운 것도 없었다.

그중에서도 브랜딩에 대해서는 글로 정리하고 싶다.
소규모 패션 브랜드에게 브랜딩은 생명과도 같다. 제품 디자인만큼이나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전자제품의 경우, 유사한 성능이라면 중소기업의 노트북과 애플의 노트북의 가격 차이는 2배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동대문 의류와 샤넬 의류의 가격 차이는 100배를 넘기도 한다. 제품의 품질과 디자인의 희소성을 고려한다고 해도 가격 차이의 많은 부분은 브랜딩이 채워 넣는다. 잘 쌓아올린 브랜딩이 사업의 성패를 좌지우지한다.

A.F.M은 스트리트 패션 시장에 포지셔닝하고 있었고 스트리트 문화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의 공감대를 얻는 것이 중요했다. 동시에 사회적 기업의 브랜드로서 구성원들의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전달하는 것 역시 중요했다. 공익적이고 선한 메시지를 거칠고 쿨하고 반항적인 이미지로 담아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스트리트 문화와 사회적 가치를 연결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이 연결 작업은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았다.

ama1

 

 

하지만 경험을 쌓으면서 조금 더 세련되게 풀어낼 수 있었다.

lightmyfireforhumanrights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식으로 브랜딩을 정립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익힐 수 있었다. 브랜드 에센스를 수집하고 선별하는 작업, 선별된 에센스를 이미지화 시키는 작업, 대고객 커뮤니케이션 톤을 선정하는 작업을 차근차근 정립했다. 패션은 예술적인 측면이 있는 산업이기 때문에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의 개인적 감성과 역량으로 브랜딩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브랜드를 사업화시키고 조직화시키기 위해서는 설계와 체계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런 브랜드야. 어때?”
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논리가 필요하고 고객이 공감할 수 있는 감성도 필요하다. 그런 논리와 감성은 기획과 설계가 필요하다.

 

 

그런데


A.F.M과 함께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꽤 많은 것을 이뤄냈다.
제품과 컨텐츠의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매출도 늘었고 유통처를 중심으로 브랜드 입지가 생기면서 충성도 높은 고객도 생겼다.
물론 모두 내가 혼자서 이뤄낸 결실은 아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혼신의 힘을 다해 일을 했고 회사에서 자본 투자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렇게 성장하는 가운데 내적으로는 지나칠 수 없는 의구심이 생겼다.

의류 브랜드 사업은 충분히 흥미롭고 매력적인 사업이었다.

A.F.M은 사회적 기업으로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였다.
게다가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고 멋진 컨텐츠를 만들고 팬들과 교류하는 것은 충분히 즐거운 일이었다.
모든 걸 바쳐서 헌신적으로 일했고 애정도 남달랐다.

반면 A.F.M은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제조업이었다.
구조적으로 점진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제조업도, 점진적인 성장도 결코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벤처회사에서 기대한 것과 내가 꿈꾸는 창업은 이게 아니었다.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발상이지만
매우 위험하고 어려워 보이더라도 혁신적인 사업 모델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래, 스타트업다운 비지니스를 하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A.F.M을 다루는 방식에는 한계가 분명했고 그 점이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