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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지식이 없어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경제서라는 추천이 많았다.
분명 어려워서 도저히 읽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여유를 갖고 읽기는 힘들었다. 나로서는 익숙하지 하지 않은 용어와 원리가 많아 꽤 오랜 시간 읽었다.
23개 챕터로 명확하게 나뉘어 있어 읽고 정리하기는 편리했다.

책 전반에 걸쳐서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을 비판하고 있다.
책 제목의 ‘그들’은 ‘자유시장경제론자’이고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자유시장경제의 문제’다.

23가지 중 몇가지 인상깊었던 내용은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변화를 인식할 때 우리는 가장 최근의 것을 가장 혁신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인터넷 혁명의 경제적, 사회적 영향은 최소한 지금까지는 세탁기를 비롯한 가전제품만큼 크지 않았다. 가전제품은 집안일에 들이는 노동 시간을 대폭 줄여 줌으로써 여성들의 노동 시장 진출을 촉진했고, 가사 노동자 같은 직업을 거의 사라지게 만들었다.”
“인터넷은 우리의 여가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생산 분야에서도 그렇게 혁명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

저자는 인터넷의 성과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점을 분명히 했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최근 나도 온라인의 생산성 측면에서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최근 트랜드인 ‘O2O 비즈니스’ 만 봐도 그렇다. 대부분 오프라인 비즈니스가 플랫폼을 옮겨가는 정도에서 정리되는 것 같다.
카카오 택시가 있어서 좀 더 편리하게 택시를 잡을 수는 있겠지만 택시를 더 타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배달의 민족이 있어서 좀 더 편리하게 음식을 주문할 수는 있겠지만 음식을 더 시켜 먹게 되는지 모르겠다.
나는 온라인의 힘을 사랑하지만 정말 ‘온라인’으로 새로운 생산성을 만들어내는 ‘비즈니스’는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자 정신이 더 투철하다.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이유는 개인들에게 기업가 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산을 할 수 있는 기술과 현대식 기업 같은 발달된 사회 조직이 없어서이다.”
“마이크로 파이낸스 운동이 시작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이로 인해 고객들의 생활이 수치상으로 개선되었다는 확고한 증거는 거의 없다.”
“에디슨이나 빌 게리츠처럼 특별한 인물들도 수없이 많은 제도적, 조직적 지원을 받지 않았으면 오늘날과 같은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한 나라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노력이나 재능보다 공동체 차원에서 효율적인 조직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영웅적인 기업가들이 등장하는 신화를 거부하고 집단 차원의 공동체적 기업가 정신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조직과 제도를 마련하도록 돕지 않으면 가난한 나라들이 빈곤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개인의 기업가 정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건강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
마이크로 크래딧은 나의 판타지였다. 나의 비즈니스 이상향이었다. 슬프게도 실패했다. 무하마드 유누스는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방글라데시를 구원하지 못 했다.
업계에서 스티브 잡스, 제프 베조스, 엘론 머스크의 성공 신화가 회자된다. 물론 대단한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이 사람들에 비견할 정도의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분명 한국에서도 태어난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위상을 갖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캄보디아에서 피카소가 나올 수 없는 것처럼 한국에서 스티브 잡스, 제프 베조스, 엘론 머스크는 나올 수 없다. 그 이유는 저자의 논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찾습니다.” 라는 문구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아마도 창조 경제라는 미명 아래 실시하는 스타트업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차라리 스티브 잡스를 찾는다고 하지 말고 스티브 잡스가 되지 않아도 문제없으니 지원하라고 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창업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환상은 금물이다. 정신 차리자.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1960년 타이완의 문맹률은 46퍼센트나 되었고, 필리핀의 문맹률은 28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타이완은 인류 역사에 남을 기록적인 성장률을 보인 반면에 필리핀은 그다지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모든 교육이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자.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 중에는 대다수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에 간접적으로라도 전혀 주지 않는 과목이 많이 있다.”
“한 나라의 번영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교육 수준이 아니라 생산성 높은 산업 활동에 개인들을 조직적으로 참여시킬 수 있는 사회 전체의 능력이다.”
“교육은 소중하다. 그러한 교육의 진정한 가치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잠재력을 발휘하고 더 만족스럽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

교육이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라 경제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역할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높지 않다는 얘기. 따라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 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
나는 저자의 주장에 더 보태서 교육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더 생산성이 위축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사회를 보자. 모두가 대학을 나온다. 모두가 높은 연봉의 사무직을 원한다. TO는 정해져 있고 경쟁에서 탈락하는 인원이 발생한다. 탈락하는 인원은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일을 하게 된다. 원치 않는 일을 하는 인원에게 높은 생산성을 기대하긴 힘들지 않을까. 저자는 모두가 대학을 나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물론 나도 모두가 고등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전제는 사회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등 교육을 받은 인원이 마땅히 수용할 충분한 일자리와 그의 선택에 대해 인정해줄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 대한민국은 상당히 멀다. 말은 참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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