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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이 되면서 진보적인 생각에 대해 솔직해지고 싶어졌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에는 특별한 고민과 의심 없이 진보적인 생각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솔직해지고 싶다. 나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진보적인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최근에 페미니즘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35년을 남성으로 살아온 내게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불편한 부분이 많다. “남자도 힘들어”와 같은 부적절한 방어논리를 키우기도 했다. 페미니즘과 관련된 독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호기심이 많은 기질 때문이겠지만 그보다는 확실한 나의 입장을 갖기 위해서다. 트랜드에 민감한 소문난 독서가는 이미 연초에 이 책을 읽었고 오늘 책을 빌려 오늘 다 읽어버렸다.

82년에 태어난 김지영은 나와 같은 시대를 산 여성이다. 시대적 공감대 덕분인지 책 읽기는 매우 수월했다. 작가의 덤덤한 글쓰기 솜씨도 한몫했던 것 같다. 김지영의 성장기를 유년시절, 학창시절, 회사생활, 결혼생활로 구분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소설은 드라마적이지 않고 보편적이며 사실적이다.

  • 김지영의 적은 남성, 구세주와 히어로는 여성이라는 구도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 이유가 내가 남성이고 나도 진영논리안에서 사고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나는 그렇지 않은데…라는 억울한 감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 소재를 자극적으로 활용한 부분들은 오해를 부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김지영이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에 겪었던 차별과 폭력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많이 나아지고 있고 앞으로는 더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경제활동과 육아의 문제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변화의 필요성을 크게 느낀다. 출산으로 인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사회 구성원으로 전락해버리는 여성의 처지는 상당히 처참하다. 이 문제는 매우 복잡한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소시민적인 생각으로는 한 가정이 출산을 했을 때 남녀가 모두 의무적으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을 제도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남성의 군 복무처럼 출산, 육아휴직이 당연한 공백기로 사회에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전경련한테 돌 맞을 소리긴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은 비교적 부드럽다. 나는 페미니즘 운동이 우리 사회에서 부드럽기를 원한다. 혹자는 부드러움은 변화를 만들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격한 페미니즘 운동은 변화가 아니라 그들만의 벽을 쌓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큰 벽을 쌓아서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라면 그게 페미니즘이든 여성주의든 뭐든 지지하고 응원할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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