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 것인가
쉼 없이 달려온 5년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 달은 아무 생각 없이 쉬었다. 정말 푹 쉬었다.
돈벌이가 걱정될 즈음. 형편없이 살지는 않았는지 디자인 프리랜서 일이 계속 잡혔다. 당장 돈벌이가 급하지 않았다.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이제 뭘 하면서 살까. 취업을 할까 창업을 할까. 고민했다.
지금 당장 취업을 하더라도 나는 언젠가 창업을 꼭 할 거라고 생각했다. 늘 갖고 있던 생각이다.
5년간 작은 회사에서 창업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해본 것은 아니다.
내가 보기만 했었던 그 일을 내가 직접 할 수 있을지는 나 스스로 검증이 필요했다.
뚝딱 창업을 할 수는 없었다. 완전한 창업이 아니더라도 창업이 가지는 속성을 가진 일을 해보고 싶었다.
창업과 취업에는 여러가지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중에 하나가 창업은 돈에 대해 책임을 지며 일을 한다는 점이고 취업은 돈을 받으며 일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해봐야 할 일은 내 돈을 투자해서 일을 관리하며 돈을 벌어보는 일.
에어비앤비 호스트
1~2년 전부터 주변에 에어비앤비 호스트에 대한 말들이 많았다. 누구는 어디서 호스팅을 하는데 잘 된다더라. 귀찮은 일이 많긴 하지만 부업으로 해볼 만 하다더라.
그때는 내가 할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작스레 고등학교 친구가 호스팅를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마침 잘됐다. 내 돈을 투자해서 실제로 일도 하고 돈도 벌어볼 수 있는 일. 비교적 난이도가 높지 않은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게다가 재무적으로도 완전히 실패했을 경우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 일의 목적은 창업의 냄새를 맡아보는 것이었다. 실제 창업보다 훨씬 적은 자원, 비용, 고민이 필요한 일이지만 예행연습으로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같이 일 해보지 않은 친구와 함께 도모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둘 밖에 없지만 복수의 사람이 함께 일을 도모하면 조직이다. 돈과 비전을 반반 씩 섞었을 때 어떤 의사결정을 내가 내릴지도 궁금했다.
정성적인 목표도 잡았다. 첫째, 어떠한 경우에도 친구와 갈라서지 않을 것. 둘째, 업무를 효율화 시킬 것.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 이 두가지 조건을 만족시킨다면 프로젝트는 성공으로 평가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빨리 움직였다.
실행은 속도
무엇보다 실행 속도에 중점을 두었다. 동일한 권한을 갖고 함께 일을 도모하다보면 의사결정을 미루면서 일이 늘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최대한 계획적으로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서점에 가서 관련 도서도 찾아 읽었고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정보도 수집했다. 친구와 함께 일할 워크시트도 작성해서 나름대로 효율적이고 계획적으로 움직였다. 에어비앤비 홈페이지를 통해서 상권 분석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스타트업에 5년 있으면서 일을 시작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이 배웠나보다. 중간중간 몇몇 고민해야할 지점들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스무스하게 일이 진행됐다.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방을 알아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인테리어도 하고…
주변 경쟁자들과 비교해서 전혀 부족하지 않은 수준으로 준비했다. 처음 친구와 일을 진행하기로 결심한 지 약 한 달 만이었다.
일은 쉬웠다. 보람도 있었다. 사람은 어려웠다.
호스팅을 시작하고 바로 2일 만에 첫 게스트를 맞이했다. 첫 달부터 월 손익분기를 넘길 수 있었고 운영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손익분기를 넘기지 못한 달이 없었다. 운영한지 3달 만에 슈퍼호스트를 달았다. 그만큼 영업은 기대이상으로 잘됐다. 운영 리소스도 매우 효율적으로 관리했다. 고객관리와 청소, 이 두가지가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핵심 업무인데 매우 빠른 속도로 효율화되었고 실제 벌어들이는 수익 대비 업무가 많지 않았다.
호스트를 하면서 자주는 못했지만 종종 게스트와 만나 인사도 하고 얘기도 나눴다. 반갑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에어비앤비가 작동하는 원리는 정확하게 경제의 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이 제공하는 부가적인 가치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점은 친구와의 관계였다.
내가 기대하는만큼 친구가 움직여주지 않았다. 내가 갖고 있는 오너십만큼 친구는 갖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친구에게 원하는 태도를 친구는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호스트를 운영하면서 종종 들었다. 크게 싸운 적은 없지만 일이 잘 돌아가는데도 불구하고 종종 갈등을 겪었다.
결과에 만족. 성공적.
호스팅 횟수: 56회
별점 5점: 82 %
응답률: 100 %
예약 이행률: 96 %
약 10개월간 운영한 결과다. 막판에 이슈가 생기면서 예약 이행률과 별점이 조금씩 깎인 것은 아쉽지만…예상한 것보다 1~2달 정도 먼저 호스팅을 종료하게 됐지만 정량적 결과에 만족한다. 아주 큰 수익을 올리진 못했지만 재무적 손실은 없었다.
정성적 결과에도 만족한다. 많은 걸 배웠다. 매출과 비용에 대한 감각을 기를 수 있었다. 아주 단순한 구조이지만 현금 흐름에 대한 감각도 기를 수 있었다. 실무자였을 때 경험하기 힘든 경험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나의 평가 기준도 달라졌다. 운영하는 기간 내내 친구에 대해서 나의 기준대로 정의하고 그 친구에 대해 판단했다. 그런데 그게 친구의 전부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장점이 많은 친구였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 많을 것이다. 사람은 정말 중요하다. 앞으로 더 많이 배워야 한다.
나 스스로 뭔가 일을 도모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만족한다. 큰 자신감을 갖게 됐다. 어떻게 보면 작은 일이지만 우리는 항상 작아 보이는 일은 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에어비앤비 호스팅조차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이제부터는 아마 더 큰 관점을 갖고 새로운 일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최초에 목적한 것을 모두 만족시켰다. 호스팅을 사업화하는데 성공했고 동업한 친구와 큰 갈등 없이 마무리했다.
이제는 더 큰일을 도모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