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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 플랫폼 사업


대표님(전 이사님이 대표이사로 변경됐다.)께 A.F.M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퇴사까지도 생각했다. 그만큼 진지하고 깊이 있게 고민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개인적인 비전과 맞지 않는 일을 지속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표님께서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퇴사를 만류했고 새로운 일을 해보자고 말씀하셨다.

당시 오르그닷은 새롭게 플랫폼 사업을 기획하고 있었다.

사실 오르그닷은 사업 초기부터 플랫폼 사업을 구상했었다. 몸담고 있던 직원들도 늘 전통적인 의류 사업을 초월한 혁신적인 사업을 갈망했다.
실행하지 못 했던 이유는 다분히 현실적인 이슈 때문이었다.(매출이 나오는 사업을 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2013년, 운영하던 2개의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플랫폼 사업을 시작해볼 만한 외부 기회도 생겼다.

외부 기회를 발판으로 직원 한 분과 함께 플랫폼 사업을 기획하고 있었다.
일은 많고 일손이 적다 보니 속도가 잘 나지 않았다. 대표님께서는 그분과 함께 팀을 만들어서 사업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하셨다.

대략적인 사업 내용은 늘 얘기하던 것이라 잘 알고 있었다.
전혀 쉽지 않아 보였지만 시장에서 분명히 새로운 사업이었다. 사업이 만들어 낼 새로운 가치도 눈에 보였다.

도전할만한 동기가 충분했다.

 

 

사업 기획, 문제의 정의와 솔루션


오르그닷은 다년간 의류 사업을 하며 나름대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갖추었고, 산업 내에서 해결해야 할 구체적인 문제도 발견했다.

그중에서도 오르그닷은 의류 생산 분야에 주목했다.

의류 브랜드는 일반적으로 기획과 디자인을 인하우스로 처리하고 생산은 아웃소싱을 맡긴다.
의류 산업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봉제공장과 브랜드 사업체는 숙명적 사업 파트너다.

한국의 봉제 인프라는 전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질적으로 높고 양적으로 풍부하다.
글로벌 아웃소싱의 여파로 제3국 생산이 본격화된 지 이미 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상당한 양의 제품이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다.
현재 기준으로 전국에 약 2만 개의 의류 봉제업체가 존재한다.

한편, 국내 의류 브랜드 창업은 장벽이 낮은 편이다.
자본금만 갖춰지면 누구든지(의외로?) 손쉽게 창업하고 유통까지 할 수 있다.(물론 사업을 잘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지만)
그래서 그런지 창업에 대한 열의가 높은 편이다. 매달 주요 유통처에 수십 개의 신규 브랜드가 입점한다.

문제는 봉제공장과 의류브랜드 모두 서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일하는 방식 또한 너무나도 비체계적이라는 부분이었다.

이 문제는 실제로 오르그닷이 사업을 하며 겪는 통증이었다.
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새로운 공장을 확보하기가 어려웠고 공장과의 주먹구구식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제품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우리는 여기서 사업의 기회를 포착했다.

온라인을 통해
봉제 공장에 대한 양질의 정보를 제공해서 양자가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하고 이들이 보다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업무를 관리할 수 있도록 생산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고자 했다.

정보 비대칭 해소, 의류 생산 효율화 , 봉제 일감 공급 확대 등등 사업 만들어 낼 가치를 확신했고 우리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디자이너와 생산자를 연결하는 온라인 플랫폼, 디자이너스 앤 메이커스


우리는 온라인의 힘과 가능성을 믿었다. 온라인의 접근성과 효율성을 바탕으로 의류 생산을 혁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여전히 국내에는 2만여 개의 봉제공장이 존재하는 만큼 시장의 크기도 충분히 크다고 생각했다.

‘디자이너스 앤 메이커스’라는 브랜드명을 짓는데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고객이 될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함께 사업을 일궈나갈 생산자들에게도 동등한 권위와 가치가 부여된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디자이너스 앤 메이커스는 간결하면서도 우리가 추구한 가치가 잘 담겨있다고 생각했다.(시간이 흐르고 이름이 너무 어려워서 문제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기획한 사업을 현실화하기 위해 우리는 영리하게 고민하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고객의 눈높이에 맞는 온라인 플랫폼을 밤낮으로 기획했고
함께 생태계를 만들어갈 봉제공장 사장님들과 디자이너들을 발에 땀이 나도록 만나고 설득했다.

온라인 서비스 기획은 처음 하는 일이었지만 대표님께서는 감사하게도(?) 내게 오너십을 주셨다.
처음으로 웹과 앱에 대해서 진지하게 경험하게 됐는데 호기심 많은 나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이라는 것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고민했고 UI/UX 기획, 스토리 보드, 와이어 프레임을 그리는 실무도 담당했다.
개발자, 디자이너와 호흡을 맞추는 게 어떤 것인지도 진하게 경험했다.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던 서비스들이 얼마나 세심한 고민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몸소 느끼게 됐다.
더불어 IT에서 왜 인문학이 중요하게 부각되는지도 공감하게 됐다.

온라인 서비스 런칭하고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데이터에 기반하여 목표를 설정하고 성과 측정을 하는 운영 전략에 대해서도 많은 역량을 쌓을 수 있었다. 회사 내에 아무도 온라인 서비스 운영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서비스 KPI를 설정하고 관리 챠트 및 데이터 분석툴을 만들어 냈다.

 

온라인 플랫폼은 우리가 기획한 사업에서 반쪽에 불과했다. 디자이너스 앤 메이커스는 최근 유행하는 O2O 성격의 사업이었다. (유행을 좇아 사업을 기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 오프라인에서 디자이너와 생산자가 서로 협력하는 방식을 파악하고 그들과 우리 사업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너무나도 중요했다.

역사가 긴 시장인 만큼 견고화된 시스템을 재구성하는 일에는 많은 장벽과 도전이 존재했다. 공장 사장님들과 패션 디자이너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공장 사장님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만났다. 부모님 또래의 생산자와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디자이너들(나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은 전혀 쉽지 않았다. 사업은 논리로만 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크게 실감했다.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어려운 만큼 도전 욕구는 샘솟았다. 내가 사업을 만들어나가는 중심에 있다는 생각을 놓은 적이 없었다. 후회가 없을 정도로 집중했고 혼신의 힘을 다해 일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마침표


약 3년간을 디자이너스 앤 메이커스를 위해 보냈다.
아무것도 없을 때부터 시작해서 많은 것을 만들어 냈다.

모든 일을 내 일처럼, 내 사업처럼, 진지하고 신중하게 대했고
감사하게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나를 많이 믿어줬다.

덕분에 짧은 시간 동안 많이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다.

-사업 기획
-서비스 기획
-온라인(웹&앱) 서비스 운영
-파트너 영업과 관리
-고객 마케팅과 관리
-팀운영
-대외 협력
-C/S
-컨텐츠 제작

어느 것 하나 손대지 않은 일이 없었다.
요구되는 업무량을 부족한 인력으로 커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온라인 플랫폼 비즈니스는 초기에 데이터 베이스와 컨텐츠를 확보하는데 burning cash 할 수 밖에 없다. 외부 자금 조달은 반드시 그 대가가 따른다. 어쩔 수 없이 외부용역사업을 하게 됐다. 동시에 여러가지 사업을 핸들링하면서 많이 힘들고 벅찼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문서 작성같은 실무적인 것들을 떠나서 외부용역사업은 우리 사업의 목표와 타기관의 목표를 조화롭게 배합해서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서로에게 득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배웠다.

 

사업이 2년 차에 접어들면서 회사 내부적으로 어려운 일이 생겼다.
함께 사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던 대표님과 직원분이 자리를 근 1년간 비우게 되면서 사업 운영과 실무를 모두 감당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두 분이 자리를 비우게 된 시기는 인원이 3명에서 6~7명으로 인원이 크게 늘어났던 시기였다.

맨파워 중심으로 이끌어가던 사업을 팀의 효율로 이끌어가도록 재편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신규로 영입된 인원들은 주니어 직원과 인턴들이어서 내가 많은 짐을 져야 했다.

역량을 극한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고 성과에 대한 욕심도 컸다.

혼자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서비스 기획 실무부터 팀운영, 전략 기획, 대외 협력 등 모두 감당해야 했다. 실무적으로도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사업의 대표 역할을 하는 것은 정말 익숙지 않았고 많이 어렵게 느껴졌다. 늘 내 회사라고 생각하고 오너십을 가지고 일했지만 실제로 대표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어떤 건지는 정말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이었다.

많은 부담과 과제를 헤쳐나가면서 스스로가 성장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전에 해왔던 일(오퍼레이터)과 다른 성격의 일(디렉터)을 하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함께 합을 맞추던 대표님과 직원분이 돌아오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회사는 더 이상 정상적으로 업무를 할 수 없는 환경이 돼버렸다. 다른 직원분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대표님을 제외하고 전 직원 중에 두 번재로 오래된 직원이 나였다. 그만큼 회사에 대한 애정이 컸고 함께 일한 사람들과의 추억도 소중했다. 그렇기 때문에 퇴사에 대해서 오랜 시간 고민했다.

하지만 회사에 존재하는 문제는 내 힘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3개월을 고민하고 퇴사를 결정한 후 2개월을 더 일하고 퇴사하게 됐다.(후임을 찾는데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는데 결국 찾지 못하고 퇴사하게 됐다.)

 

 

사람들은 첫 직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크게 공감한다.

나는 오르그닷에서 정말 열심히 즐겁게 일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오르그닷 입사 전의 나와 입사 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사업 기획, 전략 기획, 서비스 기획, 브랜딩, 마케팅, 디자인 심지어는 코딩까지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할 수 있게 됐다.
하려는 일을 막지 않고 독려해주는 문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 같다.

나를 믿어주고 배려해주는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일했다.
경험도 역량도 부족했던 나를 믿어줬던 김방호 대표와 함께 일한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커리어를 떠나서 인생에서 후회없는 추억과 경험을 남겼다.
오르그닷은 나에게 정말 좋은 직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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