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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 창업 => SOPOONG


인문학 전공자의 미래는 나쁘게 말하면 졸업하고 나서 할 게 없고, 좋게 말하면 정해진 길이 따로 없어서 미래를 자유롭게 그릴 수 있다.

다행히도 나는 사상이 자유로웠다. 나의 20대는 그림-세계여행-봉사활동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스티브 잡스가 얘기하는 connecting the dots 정말 크게 공감한다. 신기하게도 뭔가에 끌리고 열심히 하다 보면 다음 길이 열렸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직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중요하지만 직업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부분도 함께 고려해야 했다.
여전히 이타적인 성격의 일을 하고 싶었으나 박봉을 시달리며 신념에 의지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우연히 친구를 통해 ‘사회적 기업’을 알게 됐다.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타이틀이 멋져 보였다. 돈도 벌고 좋은 일도 한다니! 무엇보다…세상을 바꾸는 비지니스라니!
열쇠를 손에 쥔 것 같았고 도전해보고 싶었다. 기왕이면 직접 창업을 하고 싶었다. 젊고 쿨한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
사회, 기업, 창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책도 많이 읽고 나름대로 부지런히 연구했다. 사회적 기업의 개념이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제한적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SOPOONG을 알게 됐다. SOPOONG에서는 수요일마다 사회적 기업이나 소셜벤처에 관심이 있는 나 같은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나누는 일종의 상담 코너가 있었다. 당장 전화해서 신청했고 SOPOONG의 인큐베이터 두 분과 얘기를 나누게 됐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아는 건 하나도 없지만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그들이 해주는 얘기를 한참 동안 들었다.

나는 정말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전략 변경, 취업


SOPOONG에 다녀와서 생각이 달라졌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는 것보다는 사회적 기업에 들어가서 경험해보는 게 순서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 사회적 기업이 많지 않았다. 이제 막 젊은 벤쳐 형태의 기업들이 생겨나는 시기였다.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하면서 일할 만한 기업을 탐색했지만 딱히 끌리는 기업이 없었다.

그러던 가운데 SOPOONG에서 만난 인큐베이터가 TABLE FOR TWO를 소개해줬다. TABLE FOR TWO는 일본에서 발족된 NPO인데 SOPOONG의 시니어 인큐베이터가 직접 사업으로 국내에 런칭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함께할 인턴을 한 명 찾고 있는데 혹시 지원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TABLE FOR TWO는 2가지 미션에 집중한다. 선진국의 ‘비만’과 개발도상국의 ‘기아’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규정. 선진국에서 적정한 열량의 한 끼를 먹으며 300원을 기부하면 개발도상국에 영양가 높은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방식의 1 FOR 1 모델이다.

사회적 기업은 아니었지만 쉽고 명쾌한 컨셉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바로 지원했다.
대표님과 면접을 봤는데 의지를 높게 사주셨고 곧 일을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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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FOR TWO KOREA, 6개월 간의 인턴


나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됐다. 사무실은 SOPOONG의 한 공간을 썼다. 대표님과 나 둘이서 일했다.
TABLE FOR TWO는 일본과 미국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만들어 낸 상황이었다.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거론될 만큼 국제적인 위상과 객관적인 평가가 우수한 모델이었다. 한국에 이 모델을 정착하고 활성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당연히 우리는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TABLE FOR TWO는 B2B사업이다. 개인 식당이 아닌 기업, 기관, 학교의 구내식당에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운영하는 것이 TABLE FOR TWO가 운영되는 방식이었다. 초기 6개월을 프로토타입 기간으로 두고 단기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초기 사업비용을 부담하는 투자자가 있었으므로 6개월 안에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열정은 대단했지만 정말 어떻게 일하는지 몰랐다. 어떤 전략으로 어떻게 일을 할지 감을 못 잡았다. 처음 일을 시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면 창피할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다. 대신 대표님이 요청하는 일은 어떻게든 성과를 내보려고 노력했다.

첫 번째 맡겨진 업무는 전화영업이었다.

기업에 TABLE FOR TWO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미팅을 성사시키는 업무였다.

콜드콜을 시작했다. 수백 개 기업의 사회공헌부서에 전화를 돌리고 메일을 보냈다. 평소 전화 영업하시는 분들께 매정하게 굴었던 스스로가 반성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겼다. 어떻게 하면 답변을 받을 수 있는지 다시 한번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는지 등등.
결과적으로 미팅까지 성사된 건은 1% 미만이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작은 회사가 아무것도 없이 영업하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노동집약적인 것인지 실감했다.

두 번째 맡겨진 업무는 발로 뛰는 시장조사였다.

실제 기업 및 학교의 구내식당에 가보고 실무자 및 관계자들과 만나서 TABLE FOR TWO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었다. 어떤 장벽이 있고 실무자들은 프로그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보는 업무였다.

강남과 종로에 있는 일반인이 출입 가능한 거의 모든 구내식당에 직접 가봤다. 구내식당의 시스템을 둘러보고 현장 실무자에게 프로그램의 도입 가능성에 대해 의견을 묻고 들었다. 낯짝 두껍게도 무작정 문열고 들어가서 인사하고 소개하고 의견을 물었다. 여러 구내식당에 가보고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듣고 나서야 프로그램 도입을 위해서는 몇 가지 현실적인/기술적인 장벽들이 있음을 알게 됐다. 하지만 충분히 극복 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보다 큰 문제는 대기업의 복잡한 의사결정구조와 다양한 이해관계였다. TABLE FOR TWO프로그램 도입을 위해서는 기업의 총무팀, 인사팀, 사회공헌팀, 케이터링 업체 등 설득 해야하는 조직이 너무나 다양했다. 또 이 많은 이해관계자 중에 어떤 조직이 의사결정을 하는지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이 프로그램 도입을 위해서는 BOTTOM UP 이 아닌 TOP DOWN 형태의 영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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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년생인 내가 기업에 B2B 영업을 하는 데는 한계가 많았다. 물론 일을 하면서 나아진 점은 있었지만 단시간내에 극복하기 힘든 것들이 많았다.
내가 잘할 수 있으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을 생각했고 대학의 학생회에 접근해보기로 했다. 서울에 있는 모든 대학의 총학생회에 컨택했다. 그동안 경험하고 익힌 대로 전화하고 메일 보내고 미팅하고 현장도 답사했다. 대학도 구내식당과 관련해서 기업만큼이나 이해관계가 다양하고 복잡했지만 기업보다는 조금 더 수월하게 일이 진행됐다. 몇 가지 의미 있는 상과를 만들어냈다.

학생회와 의논해서 TABLE FOR TWO 프로그램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묻기도 하고 축제 기간을 활용해 프로그램을 변형해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해보기도 했다.

몇몇 대학 및 기업과 논의가 진전되고 있었으나 우리는 6개월 안에 목표한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단 1건의 B2B영업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나의 계약 기간은 종료됐고 대표님도 사업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회고


1. 현실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

대표님과 나는 쉽게 생각한 측면이 있었다. TABLE FOR TWO는 일본과 미국에서 어느정도 사업성이 검증된 모델이었다. 기업은 아프리카 사회공헌사업으로 홍보도 할 수 있고 직원들에게 건강식을 제공해 직원 복지에도 기여할 수 있는 나쁠게 없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직장인에게 점심 식사는 그나마 즐거운 시간인데 그때까지도 아프리카를 떠올려야 하냐. 직원들이 식사를 하면서 기부를 하게 하려면 직원 카드시스템을 통째로 수정해야 한다. 케이터링 업체와 계약 관계가 있어서 논의해봐야한다. 등등 예상하지 못한 이슈들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이슈에 대한 대비책이 거의 없었다. 고민만 많았고 시간은 그대로 흘러만 갔다.

새로운 일을 계획할 때는 철저히 준비하고(결코 철저하게 준비가 되지는 않지만) 보수적으로 계획하고 예상치 못한 이슈에 대해서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재치도 필요하다.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2. 열정이 다가 아니다.

6개월 간의 업무를 정리해보면 대부분이 시장조사와 영업이었고 작게 컨텐츠 제작, 프로젝트 기획 및 매니지먼트 일을 했다.
TABLE FOR TWO의 비전에 열정적으로 공감했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 누가 나를 감시하지 않았지만 누가 나를 감시하는 것처럼 일했다.
하지만 업무적인 성과는 보잘 것 없었다. 돌이켜보면 차가운 머리로 해야 하는 일도 뜨거운 가슴으로만 했던 것 같다. 부작용은 과도한 리소스 누수와 비효율적인 시간 관리로 드러났고 정해진 시간에 목표한 바를 달성하지 못했다. 열정도 중요하지만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계획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걸 많이 배웠다.

3. 나 아직 한참 멀었구나.

SOPOONG는 다음의 창업자였던 이재웅 씨가 설립한 기업이다. TABLE FOR TWO KOREA의 대표는 이재웅 씨와 친구 사이였다. 자연스럽게 6개월간 TABLE FOR TWO 인턴 생활을 하면서 그분을 만나고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그분은 TABLE FOR TWO 사업에 조언을 많이 해주셨고 팀원으로 일하는 나를 종종 과도하게 놀리기도 하시고 짓궂게 혼도 내셨는데 당시에는 불쾌하기도 하고 나 같은 인턴에게 왜 저렇게까지 할까…하는 애석한 마음도 들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깨달았다.
SOPOONG에는 소셜벤쳐와 사회적기업에 관심을 갖는 똑똑한 젊은 기업가들이 많이 드나들었는데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분 입장에서 내가 얼마나 답답해 보였을까.

그분을 통해서만 나의 부족함을 깨달은 것만은 아니다.

TABLE FOR TWO KOREA에서 나는 정말로 열심히 일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만들지 못했다.
인턴이 대체 얼마나 큰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겠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2명이서 일하는데 그런 게 어디있나.

필드에서 나는 무력했다.
배우고 성장해야겠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4. 아쉽다.

6개월간의 경험을 통해 TABLE FOR TWO를 국내에 도입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은 어느 정도 판가름 났다. 인턴을 종료할 때까지도 사업에 대한 열정만큼은 충만했다. 인턴 기간이 만료되기 전날까지도 의욕적으로 새로운 일을 추진했고 일을 그만두고도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했다. 경영적인 판단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더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이제서야 일을 좀 할 줄 알게 된 것 같은데 더 이상 할 수 없게 돼서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가끔 생각난다. 다시 한다면 그때보다 훨씬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누구나 하는 생각이겠지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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